[오형규 칼럼] 선거 뒤에도 '박정희 공로' 인정할까

입력 2022-03-02 17:19   수정 2022-03-03 00:15

선거 때면 무성한 말이 ‘국민 통합’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는 말이기도 하다.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면서도 5년 내내 자기편만 챙긴 문재인 대통령이 새삼 입증했다.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주된 요인이 역사에 대한 인식과 평가다. 갈등과 대립의 태반이 진영 간 상반된 역사 인식에서 비롯된다. 현대사에 관한 한 ‘국민이 공유하는 역사’가 없다는 데 원인이 있다. 지나간 과거를 정반대로 기억하는데 무슨 일이건 컨센서스가 잘 이뤄질 리 없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긍정평가 시리즈는 유권자의 눈길을 끌 만하다. 그는 지난달 국립현충원에서 이승만·박정희 묘역을 참배했다. 이승만의 농지개혁, 박정희의 산업화 공로를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 심지어 전두환 전 대통령조차 경제는 잘했다고 평가했다.

일련의 긍정평가 시리즈는 ‘과오도 많다’는 전제를 깔았지만 여당에선 보기 드문 모습이다. 유연하고 실용적이며, 통합 의지가 있다는 이미지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전혀 다른 장면이 오버랩된다.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했다가 논란이 되자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며 단순한 수사(修辭)라고 해명했던 것 말이다. “친일 매국세력의 아버지(이승만)” “쿠데타로 국정 파괴하고 인권 침해한 독재자(박정희)”라고 비난하고,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호남에 가선 다른 소리를 했던 것도 이 후보였다.

의아한 것은 근현대사라면 눈에 쌍심지를 켜는 진보좌파 진영에서 이에 대해 별다른 시비가 없다는 점이다. ‘전두환 공로’ 인정 부분은 진영 내 비판에 이 후보가 사과했고, 범여권에서 익명으로 비난한 적은 있다. 그러나 과문한 탓인지 소위 ‘진보 스피커들’이 실명으로 전직 대통령 재평가에 딴지를 거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들의 역사관(觀)이 달라진 걸까. 그동안 진보좌파 진영에선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 ‘반칙과 특권이 지배한 나라’라고 하지 않았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은커녕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친일청산이 안 돼 토착왜구가 준동하고, 재벌 특혜와 정치 뒷돈 거래를 일삼은 부패한 나라로 폄하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모토가 적폐청산이요 주류세력 교체 아닌가.

그렇다면 이 후보의 재평가 시리즈에 벌떼처럼 들고일어나야 정상인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선거용 일시 립서비스’로 여기는 게 아니고서야 납득하기 힘든 반응이다. 야당 108석보다 여당 180석이 일사불란한 것처럼, 대선 승리라는 공동 목표를 위해 ‘내부 총질’을 철저히 금기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10위 경제대국이자 개발도상국의 롤모델이 됐다. 이런 성과는 어느 한 정권, 한 세대의 전유물일 수 없다. 국민의 피·땀·눈물 위에 기적이 쌓이고 쌓여 이뤄낸 게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1940년대 후반 이승만의 ‘나라 만들기’ 과정을 보면, 세계 최빈국이자 식민지에서 갓 독립한 나라가 공산화되지 않은 게 되레 신기할 정도다. 1960년대 박정희와 정주영·이병철 같은 거인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신식민지론, 독점·매판자본론, 종속이론 등 그 어떤 좌파이론을 들이대도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다.

유감스럽게도 산업화 세력에 이어 민주화 세력도 지금 2030세대에는 자리보전에 급급한 꼰대로 비칠 뿐이다. 민주화 투쟁이란 ‘상징 자본’으로 군림했지만 또 다른 기득권이자 ‘신(新)양반계급’이란 비판이 갈수록 커진다. 이제는 기존에 하던 식으로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신냉전의 시대다. 진보좌파 진영도 ‘스마트 좌파’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다. 북유럽 좌파정당들은 지지 기반인 노동을 개혁하고 당리당략보다 국가·국민을 우선하는 ‘스마트 좌파’로 변신했기에 건재하다. 그렇지 못하면 프랑스 사회당, 일본 민주당처럼 순식간에 희미해질 수도 있다.

정권은 5년 단위 불연속선이지만 국가와 국민의 삶은 끊임없는 연속선이다. 대선이 불과 엿새 앞이다. 이 후보에게 재삼 확인하고 싶다. 선거 뒤에도 전직 대통령들의 공로를 계속 인정할 것인가. 국민 통합을 말하려면 국민이 경험한 ‘대한민국을 만든 기적’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미래로 나아갈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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